강릉여행

강릉 선교장/ 낙가사/ 허난설헌 생가/ 설악산/ 군함박물관,정동진

(1. 강풍속에서 운전대 잡다 )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으로 향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직접 운전을 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할머니와 선엽이, 조카인 지수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지난 가을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늦게나마 바쁜 일상에서 훌쩍 떠나 생각해 볼 시간을 싶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도했던 답을 얻지 못했다.

운전대를 잡고 출발하자 마자
책임감이란 것이 몰려와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관령을 지날 때 쯤이었던가?
운전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느꼈다.
어찌된일이지?

덜컥 겁이 올라와 휴게실에 차를 세웠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고 있었다. "강풍 주의"라는 표지판을 보고
이렇게 심한 바람 속에서 100키로가 넘는 속도를 내며 달리기에
내차 "마티즈"는 너무 작은 차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을 다잡고 속도를 줄여가며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원인이 파악되자 공포는 사라졌지만
"책임감"이란 단어는 계속 따라 붙어 다녔다.

내가 스케쥴을 짜고 운전을 하고
세 사람을 책임지며 가야하는 여행길...
멋진 폼 잡고 좀 늦은 가을을 느끼고 싶어
가고싶었던 여행이 물 건너 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2. 선교장/초당두부/허난설헌생가/정동진-군함박물관 )

영동고속도로를 벗어나 도착한 강릉에 도착한 뒤
선교장을 찾았다.
조선말기 전통적인 부잣집의 99칸 짜리 옛 가옥을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큰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돌아 볼 수가 없었다.
집 뒤로 펼쳐진 산과 잘 다듬어진 잔디밭을 보니 봄에 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고>
* 선교장은 조선후기 양반가의 전형적인 주택으로, 효령대군 11세손으로 가선대부를 지낸 이내번(李乃蕃. 1703~1781)이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은 이래 300년을 이어온 집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주옥인 안채, 사랑채인 열화당, 동별당, 정자인 활래정 등이 있다. 민간주택의 한계 99칸을 뛰어넘어 120여 칸이 넘는 웅장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대문을 중심으로 한일자 형태로 펼쳐져 있는 행랑채는 총 23칸에 방이 20개, 작은 사랑채는 6칸 겹집으로 되어 있다. 고급손님들이 묵는 큰 사랑채 열화당(悅話堂)은 방이 3개로 대청마루가 6칸, 대청마루보다 약간 높은 누마루가 4칸으로 되어 있다.

선교장은 오죽헌 동쪽 1.5Km, 초당에서 서북쪽 2Km지점에 위치한다. (TEL : 033-640-4799)

선교장을 보고 난 뒤 초당 순두부 집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선교장 바로 앞에 순두부 집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에 생긴 곳이고
경포대 근처에 초당 순두부 마을이 있다기에 일부러 그 곳을 찾았다.
선교장에서 10여분쯤 경포대를 향해 가다 경포대를 오른 쪽으로 끼고 돌면 순두부 마을이 있다.

가게 겉은 화려하지 않았고, 밥상역시 아주 단촐하게 나왔지만
가격도 저렴한데다 담백하고 고소한 것이 옛날 외할머니 집에서 밥먹던 기억이 났다.

(허난설헌 생가)

식사후 허난설헌 생가를 찾았다. 아주 오래된 옛가옥이었다.

주차를 하고 조금 걸어들어가야 하는데 마을 할아버지가 긴 막대로 감을 따고 있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근처에 참소리 박물관과 오죽헌도 있지만 남편과 이미 다녀온 것이라 일부러 들르지는 않았다. 참소리 박물관은 개인 박물관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꼭 들러볼만한 인상적인 장소이다.

허난설헌 생가를 돌아본 뒤 7번 국도를 타고 정동진을 향해가다 낙가사를 들렀다.

바람이 너무도 거세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지만 주차장에서 절까지 많이 걷지도 않고, 대웅전 앞에서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낙가사에 이어 정동진 역을 찾았다. 모래시계 때문에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간이역.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소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바닷가를 조금 걸어본 뒤 세워놓은 기차에서 많은 사진을 찍고 정동진 크루주를 찾았다.

사치스럽거나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남편과 여행을 하다보면
꼭 한번 들어가보고 싶지만 싸우고 싶지 않아 포기하는 곳이 꼭 있다.
정동진 크루즈가 바로 그런 곳이다.
강원도에 여행올 때마다 들러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포기하던 그 곳..
전망대에 올라가 바라보는 동해안 정경이 정말 멋지기는했지만
차 한잔만 마시려해도 예상대로 많은 돈이 들 것같아 한번 휙 돌아보고 이내 나왔다. 나도 남편을 닮아가는 것일까?

해가 뉘엿뉘엿 지는 듯 싶더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숙소인 양양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야 했다.

(3. 권금성, 워터피아 온천)

2박 3일의 여행중
두번째 날 아침은 양양 바닷가에서 맞았다.
숙소가 바닷가에 있었기 때문에 난생처음 일출(새벽 6시45분쯤)을 보았다.
요즘 난 새벽에 아주 잘 일어날 수 있다..아마..늙었다 보다^^

아침 8시쯤
설악산 권금성을 향했다. 케이블카가 아주 새롭게 변신해서 조망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아이들이 힘들어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씩씩하게 권금성까지 걸어 올라가 주었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금성은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 기암 절벽이 실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주변에 워낙 외국인들이 많아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일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권금성에서 내려온 뒤 한화콘도에 있는 워터피아를 향해 떠났다. 워터피아에 가다 부근에 유명하다는 최춘옥 할머니 순두부집을 들러 황태 해장국을 먹었다. 소문대로 기막히게 맛이 있었는데 특히 황태구이를 잊을 수 없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회사 근처 황태구이집을 가끔 들르는 데, 강원도에서 먹었던 그 촉촉 달콤 새콤한 구이 맛은 찾을 길이 없다..

식사후 워터피아로 향했고
그 곳에서 우리 네 사람은 그야말로 재미나게 놀았다.
아이 둘은 파도 풀에 열광했고
엄마는 스파와 온천에 심취하셨다.
나는 야외 풀에 푹 빠져들었다.

이미 날이 쌀쌀해 지고 있었기 때문에
야외풀엔 사람이 없었다.
밖에 나가 물에 손을 넣어보니 이게 왠일 따뜻하지 않은가?
아무도 없는 큰 풀에서 파란 가을 하늘과 단풍잎을 바라보며 수영하는 기분이란...
내가 수영을 배우길 정말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던 순간이었다.

워터피아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가려는데
두 아이들이 프라자랜드를 놓칠리 없었다.
규모가 작기는 했지만 비용이 저렴하고 아기자기 해서
5-6세 아이들이 사용하기 좋은, 정말 깜찍한 놀이공원이란 생각을 했다.

프라자랜드에서 나와 실로암 막국수 집(033-671-5547 )을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자주 찾았다는 곳..
족발과 막국수를 먹었는데 지금까지 강원도에 들르면서 이곳에 한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을 만큼 맛이 있었다.

식사후 대포항에 들러 회를 뜨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에 엄마와 함께 나누는 소주 한잔의 맛이라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노인과 아이들과 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코스를 복잡하게 잡지 않으려는 내게
쉽게 갈 수 있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일정을 잡아준 회사 동료에게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4.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 별장 그리고 감자떡 )

4.
강원도에서의 마지막 날.

이날의 목표는 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별장이었다.
아침을 간단히 해먹고
서둘러 북쪽에 있는 화진포 고성으로 차를 몰았다.

별장 두 곳은 생각보다 화려하거나 크지 않았지만
정말 명당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일성 별장은 너른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었고,
이승만 별장과 이기붕 별장은 잔잔한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시대를 풍미하며 살다간 위대한 걸물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사라졌고..그들이 남겨놓은 흔적들이
여전히 말없이 위대한 자연 속에 묵묵히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화진포 막국수에 들러 막국수를 먹으려 했는데 공사중...아쉽지만, 별장 부근에서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 팔던 감자떡으로 점심을 대충 먹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만 남았다.
미시령이나 한계령 등 고개를 넘어오라고 일정을 잡아준 동료와 남편이 말했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7번국도를 2시간쯤이나 타고 내려와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생각지도 못했던 "운전"이었다.
겉으론 태연한 척 했지만
작은 차로 강풍속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대는 차속을 운전하기는 정말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싫은 소리 한마디 없이 우리 가족들을 이고 지고 끌고
여행 일정잡고 운전을 해준 남편이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여행할 때 차 뒷좌석에 편하게 앉아 잔소리나 해대지는 말아야지..
모든 일은 자신이 정말 겪어봐야 안다.

운전을 하는 동안 잔뜩 긴장해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다
집에 돌아와서야 엄마에게 이실직고 했다.
"엄마, 나 사실 운전할 때 너무 무섭고 긴장했었어. 이대로 차를 놓고
다른 교통편을 잡아타고 돌아오고 싶었을 정도라고.."
그러자,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아이들 챙기고 내게 간식을 주고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셨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다 알고 있었어..더 걱정할까봐 모른척했지.."

엄마를 즐겁게 해주려 했었는데
엄마는 여행후 입술이 부르트고 감기까지 걸려 앓아 누으셨다.
겁많은 딸과 아이들 챙기시느라 몹시도 힘드셨나보다.
효도를 한 것인지 불효를 한 것인지 잘 분간이 않된다는 생각이들었다.

이것 저것 생각해 볼 시간은 커녕
너무도 정신없이 맛있게 먹어가며 웃어가며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정말 정확한 한가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하는 여행.
책임감과 협력으로 함께 하는 여행.
그것이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

◇ 여행일정 :
    첫   날 : 선교장-순두부마을-등명낙가사-정동진
    둘째날 : 설악산-워터피아
    세째날 : 이승만/김일성 별장

◇ 사진들 :

◇ 교통편 :
영동고속-강릉

◇ 자세한 자료 :

검색사이트 "선교장, 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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