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엽, 선엽이와 함께 모처럼 여주를 다녀왔다. 서울에서 80키로 정도의 지척의 거리지만 주말 교통정체를 만나면 귀경시간이 엿가락 처럼 늘어날 수도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중부고속도로와 내륙중부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부터 일부구간을 4차선 확장을 해놓아 예전보다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영릉)

여주에 위치한 영릉과 녕릉은 각각 세종과 효종의 묘소이며, 두분의 능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세종은 23세에 즉위하여 1450년 세종이 53세로 승하하셨다. 능은 서울 내곡동에 만들어 졌지만 예종때 여주로 옮겨졌다. 풍수지리가들은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영릉 자리를 매우 뛰어난 명당중의 명당이라 한다.

여주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한 20분정도 가니 영능이 나온다.
이곳 영능은 대대적인 보수를 하면서, 세종대왕의 치적을 기리기위해 여느 왕능과는 달리 자체 전시관을 갖고 있다.
가을 낙엽이 영능 주변에서 불타오르고 있어 그 풍경이 아름답다. 준엽이와 선엽이는 한적한 영능 입구까지 달리기 시합을 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세종께서 만드신 각종 과학기구들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주로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와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들이다. 준엽이가 좋아하는 위인들중 한분이 장영실이다. 준엽이는 장영실이 실수로 세종의 허리를 다치게 한 일화도 얘기해준다. 재미있었다.

영릉 입구에 들어서자 장방형 연못이 있다. 연못의 물은 두마리의 용의 입에서 토해내는 물로 보충되고 있다.
릉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간단하게 향을 올렸다.
뒤이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일단의 중국과 일본인 관광객 무리였다. 왕능은 비스듬하게 ㄷ자형태로 가다보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가는 길 주변 잔디는 무지 넓다

가을 빛깔로 갈아입은 주변 나무들의 아름다운 자태와 넓은 잔디가 어울려 이곳 영릉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신륵사)

넓디 넓은 영릉에서 아이들과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시간이 빨리도간다. 조금있으면 점심시간이다.
신륵사 구경을 하고 밥을 먹자고 의견을 내었더니 배고프니 민생고 부터 해결하자고 준엽이가 강력히 요청한다.
요즘 한참 자랄 때라 그런지 많이 먹고, 자주 먹는다. 밥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식이다.

  여주의 유명한 쌀밥집을 임국장님의 도움으로 위치를 파악하여 출발했다.
식사는 비싼 편이지만 밥이 맛있는 식당이다. 작은 뚝배기 같은 그릇에 따로 밥을 해서주는 데 밥과 누룽지에서 고소한 향기가 난다. 준엽이는 "밥이 맛있어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술술넘어 가네요" 하고 평을 한다.
 

 준엽이가 확실히 여주쌀을 칭찬을 했으니 여주 쌀밥정식을 먹은 보람이 있는 셈이다..
신륵사앞에서 식사를 마치고 산책겸 신륵사로 걸어갔다. 그 넓은 신륵사 주차장에는 차가 몇대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한적하고 느긋하게 신륵사를 산책할 수 있었다.

 

신륵사는 나옹대사가 이곳에서 입적한후부터 더욱 유명해진 절이라 한다.
남한강을 굽어보는 위치의 신륵사는 절이 생겨날때 이곳에 있던 용들이 방해하여, 몇날의 불공과 기도끝에 이들을 제압하였다 하여 신륵사(神勒寺)라 이름 지어졌다 한다.

나옹대사는 인도 태생으로 고려말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준 분이시며, 신륵사에서 입적 하셨지만 부도는 경기도 회암사에 지공, 무학대사의 사리탑과 함께 있다.

이곳의 조사전은 아담하고 아름답다. 조사전 내부에는 나옹,지공,무학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신륵사 전탑은 우리나라 현존하는 전탑중 유일한 것이라 한다. 신륵사 대웅전은 조선 숙종때 다시 만들어진 것인데 조선 중기의 건축 미를 느낄 수 있다.
대웅전 뒷편에서 보니 오랜 풍상에 기둥이 조금 앞쪽으로 기울어져 위태해 보기기도 한다.

대웅전 옆 약수터에서 준엽이와 선엽이는 시원한 물을 마신다. 고맙게도 준엽이는 아빠에게 물을 한잔 권한다. 물 맛이 좋다. 준엽이는 이곳 주변의 경치를 보고 참 평화로운 곳이라고 한다. 대웅전에 입구에서 사진 한장을 찍고 남한강이 보이는 팔각정으로 나왔다.

이곳에는 나옹대사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600년된 은행나무가 있다. 가을 빛 노오란 색깔의 은행잎과 남한강의 정취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폭의 가을 그림이다.
남한강은 정자너머로 유유히 한강으로 흐르고 가을 빛은 노오란 은행잎들을 비추어 더욱 눈부시게 하고 있었다
 

(민비생가-명성황후 기념관)

영동고속도로에서 여주 IC로 빠져나오면 1분도 않가 민비생가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은 민비가 왕비로 간택되기 전까지 살았던 고택이다. 그리고 고택앞에는 민비 역사관이 있어 조선초기 비운의 왕비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기념관은 매우 훌륭한 건축으로 이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보는 것 자체가 즐겁다. 주차시설도 잘 되어 있으며 관람료도 저렴하다. 전시관 앞의 넓은 마당에는 조각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슬픈역사의 한페이지를 본다는 느낌보다는 기분 좋은 느낌… 기념관옆에는 문화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처음 이곳에서 문화관련 전시가 있으려니 하고 기대했는데 알고보니 이곳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관이다. 요일별로 영화상영 일정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 이미 어떤 영화가 상영중인가 보다. 전시관 밖에는 우는 아이와 다그치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관람중에 아이가 떠들어서 나온 듯 싶다.

선엽이는 다리가 아프다고 자기는 전시관앞 잔디마당에 앉아 있겠다고 한다.
가자고 꼬드겨보아도 요지부동이다. 전시관 건물의 아름다움에 취해 몇번 크게 감탄을 하니.. 슬금슬금 전시관으로 걸어온다.

민비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지만 매우 총명하셨다 한다. 하지만 이미 침몰하는 조선이라는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것이 그분 비극의 시작일 지 모른다.

생가는 전형적인 양반집 모습으로 사랑채와 행랑채가 구분되어 있고 작은 규모지만 고택은 아름답다.

오전 방문한 영릉에 잠드신 세종대왕이 창조/탐구/과학이 숨쉬는 찬란한 전성기였다면, 민비생가의 주인공인 민비는 기운이 다한 조선의 마지막 불꽃인 셈이다.
세종의 열정은 인재/과학/출판을 통해 국가혁신을 가져왔으나 민비의 열정에는 국가혁신의 힘이 없었다.

민비시대 조선말은 이미 자력에 의한 역사발전의 엔진이 멈춘시대다.
파도에 의해 표류하던 배는 36년 일제치하, 50년 대규모 민족상잔 6.25 치루며 난파의 절정을 이루고,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채 이제 겨우 동력을 회복하고 있다.

민비고택 주변의 가을 단풍들이 아름답다. 오페라 명성황후에서 듣던 노래소리가 석양에 물들어 은은히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