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아직 겨울의 쌀쌀함이 약간 남아 있는 날씨다.
서울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몇군데 있지만 그중 한곳이 인왕산이다. 인왕산은 1968년 무장간첩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25년간 입산통제가 되었지만 1993년부터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다.
준엽이와 선엽이를 대동하고 행여 약속시간에 늦을 까 열심히 달려왔다. 차는 공원 뒷편에 주차해 놓고 약속장소인 사직단 정문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거주지 주차제가 적용되는 지역이지만 이른 일요일 아침이라 자리가 몇군데 있어 메모를 적고 그냥 주차하였다.
햇살이 아름다운 일요일 아침이다.
조금 있으려니 김작가와 희수네 가족이 도착하였고, 이내 김사장님 가족이 도착했다. 그리고 태석이네 가족이 도착하여 출발~
(사직단, 단군성전, 황학정)
1394년 태조 즉위 3년 왕궁인 경복궁을 지으면서 동쪽에는 왕실의 조상들을 섬기는 종묘, 서쪽에는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 제를 지내는 사직단을 지었다 한다. 조선 왕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두가지 상징 건축물이 종묘와 사직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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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에게 이곳은 땅의 신에게 제를 올렸던 곳이라 설명하니, "왜 하늘에는 제사를 않지내나요 ?" 하고 되묻는다.
그것은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는데, 조선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라서 하늘의 신에게는 제사를 올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문득 작년 북경에서 보았던 천단이 생각났다. 우리나라도 고종때 황제로 칭호를 바꾸고 원구단이라는 곳(지금의 조선호텔앞 정원)을 만들어 비로소 하늘에도 제를 올렸다 한다.
사직단 옆으로 난 큰길을 따라 사직공원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며, 주변건물들도 다분히 조선의 역사를 비하시키기위해 보육시설, 놀이시설을 만들었다.
공원에는 족구장, 베드민턴장이 만들어져 있고 따스한 아침햇살을 받고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원 뒷편으로 올라가면 단군성전이 있다.
아이들은 벌써 저만치 먼져 앞서 나간다.
이 단군전은 1968년 박 정권시절 민족주체의식을 주창하면선 남산에 단군전을 건립하려다 많은 종교단체의 반대를 받지 슬그머니 사직공원 역내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는 현재 정부 표준 단군영정과 국민경모 단군상이 봉안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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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왕스카이웨이 길을 따라 올랐다.
사람 둘이 걷기에는 비좁은 인도였지만 다니는 차가 한적하여 공기와 경치는 좋다. 오르다 보니 오른편에 황학정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1898년 고종의 어명으로 창건되어 고종이 노란색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모습이 노란학(황학)이 춤추는 것 같다고 해서 황학정이름이 붙었다 한다.
인왕산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우측으로 가는 큰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이 성곽과 인왕산 능선으로 통하는 길이다.
(성곽길)
능선까지 이어진 계단을 올라보니 제법 높이 올랐다. 선엽이는 다리 아프다고 쉬었다 가자 한다.
걸음이 늦은 선엽이를 챙기며 오르다 보니 일행은 벌써 저만치 앞서갔다.
성곽너머는 서대문 방향이다. 스모그인지 안개인지 뿌연 안개너머로 빌딩 숲이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마포, 여의도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씩 오르다보니 우측으로 멀리 북악산과 그아래 청와대, 경복궁이 눈에 들어 온다.
김사장님께서 저기가 나랏님이 근무하시는 청와대군.. 하고 한 말씀 하신다. 청와대 모습을 이렇게 잘 조망할 수 있으니 군사정권시절 입산통제를 시켰나보다.
인왕산은 풍수지리적으로 경복궁 우측에 자리잡은 우백호 자리에 해당한다. 좌청룡자리에는 낙산이 해당한다.
하지만 서열이 우선인 낙산이 우백호보다 낮다 보니 왕실에서는 낙산을 기운을 북돋기 위해 흙을 날라다 산을 높이 쌓으려 했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왕권을 노린 차남의 반란이 심심치 않았던 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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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엽이와 함께 철계단길을 오르는데 발아래 펼쳐지는 경치는 점입가경이다. 선엽이는 다리가 아픈지 계단을 쉬엄쉬엄 올라왔다.
준엽이는 희수, 희준이와 함께 앞서가 보이지도 않는다. 봄의 기운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좋은 날씨다.
인왕산은 대부분이 하얀 화강암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328m로 나즈막 하지만 군데군데 바위도 타고, 철계단, 밧줄을 타고 오른는 길이 있어 마치 꼬맹이 도봉산 같다. 선엽이도 이길을 오른는 것이 지루하지 않은가 보다.
선엽이 뒤에서 기다리는 언니들과 친해져서 수다도 떨며 오른다. 나는 조금 앞서서 기다려 줄 뿐..
큰 산을 두개를 넘으니 정상이다. 우측으로는 청와대 좌측으로는 서대문, 안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능선을 따라 가면 세검정이다.
멀리 북한산 비봉도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조그만 공터가 있어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커다란 야외용 식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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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일행은 모두 둘러 앉아 점심을 펼쳤다.
서울일대를 이렇게 편안히 굽어보면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배가 고팠는지 선엽, 준엽이는 신나게 점심을 먹는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정상 조그만 공터에서 조그만 바위오르기를 하면 놀고 있다.
우리일행은 능선을 따라 세검정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치마바위, 현진건 집터, 무계정사, 창의문)
부암동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꼬맹이 인수봉쯤 되어 보인다.
중종과 단경왕후의 사연이 깃든 치마바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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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경왕후는 연산군의 장인인 신수근(당시 영의정) 딸로 12세에 진성대군(중종)과 혼인하여 부부가 되었다.
연산군폭정에 대항하여 연산군을 몰아낸 신하들은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다.
진성대군(중종)은 혹 부인이 화를 입을까 재빨리 왕후로 봉한다. 하지만 7일만에 반정공신들의 반대로 폐위되어 성밖으로 쫒겨가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중종의 나이 20세, 단경왕후가 19세였으니 7년을 살아온 두 젊은 부부에게 이별의 상처는 깊었으리라.. 중종이 부인 신씨를 잊지 못해 경복궁에서 인왕산 쪽을 바라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신씨는 신혼시절 입었던 노란 치마를 바위에 걸어놓아 중종의 아픔을 달래려 했다 한다.
왕이 되길 원치 않았던 진성대군(중종)은 왕이 된후에도 조광조의 이상정치가 실패로 끝나고, 계속되는 당파의 소용돌이에서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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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바위를 옆으로 보며 아이들과 함께 부암동쪽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가에는 멋진 집들이 즐비하다.
좋은 산을 끼고 공기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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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다 보니 현진건 집터가 눈에 띄었다. 주변의 멋진 가옥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몇해전까지 있었던 안평대군이 살았다던 무계정사는 철거된 것 같다. 몇해지나면 그나마 남아있는 저 현진건 옛집도 볼 수 없을 듯 싶다.
역사의 현장이 하나둘씩 사라진다는 것이 씁쓸하게 한다.
"…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문학인으로 가난한 생활 끝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는 현진 집터의 안내석을 보니 일제잔재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가치있는 역사를 보존하지 못하는 현세대의 무능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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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큰 비탈 차로를 내려 왔다.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졌다.
부암동 마을을 내려와 시내쪽 언덕길로 조금 올라가니 창의문(자하문)이 나온다.
서울의 북대문을 만난 셈이다. 비교적 외진곳에 위치해서 그런지 보존이 잘되어 내려온 듯 싶다. 풍수지리상 북문을 사용이 않좋다하여 통행을 하지 않았던 길이라 한다.
창의문 아래에는 작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희수,희준, 준엽,선엽, 태석,태은, 보경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고, 어른들은 앉아 숨을 돌리기 좋은 곳이다.
길이 엇갈려 성길을 타고 내려온 김사장님 가족도 이내 자하문에 모습을 보이셨다. 인왕산 코스의 종점에서 모두 만난셈이다.
개나리, 진달래가 만개하는 봄에 인왕산-창의문 코스를 답사하면 더욱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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