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같이 가기로했던 순천향 병원팀의 불참으로 우리일행 8명이 전세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산을 입문하는 사람들이 꼭 거쳐야할 곳이 지리산이란다. 그말 뜻이 무엇이지 ?
서초동에서 밤10:30분쯤 출발한 버스는 새벽 2:30분 버스는 구불구불 도로를 거쳐 성삼재에 도착했다.
이미 산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이 야심한 밤에도 성삼재는 술렁였다.

(Day1-우중산행 / 성삼재-노고단-뱀사골대피소-연하천-벽소령)

일기예보대로라면 오늘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다. 강수량은 40~90미리. 봄비치고는 꽤 많은 양이다.
오늘 걷는 길이가 16.8키로로 가장 힘든 산행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일기도 불순하다.
노고단에서 간단히 요기후, 뱀사골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노고단의 운해는 지리산 10경중에 하나 라는데 운해는 커녕 뵈는 게 없다. 다만 길가의 무수한 진달래 꽃들이 위안이다.

(역사의 회안)

뱀사골 대피소 아래로 내려가면 빗점골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이 남부군에 나오는 이현상이 사망한 곳이다.
혹자는 이현상을 한국의 체게바라라고 하기도 하고, 남북으로 부터 버림받은 외로운 혁명가라 하기도 하고..
1954년 1월 그는 이곳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혹자는 북에서 파견된 암살자에의해.. 혹은 경찰.. 혹은 군인에 의해.. 여하튼 가까이서 총을 맞고 사망한 것은 틀림없다. 남부군 활동중 평당원으로 강등되었지만 북에서 그의 가족은 김일성/김정일의 보호아래 애국열사 가족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로부터 약 10년후 1963년 11월 12일 지리산 유평리에서 세명의 마지막 빨치산이 사살 혹은 생포되었다.
2명은 죽고 마지막 빨치산인 정순덕씨는 생포되어 23년간 복역하다 석방, 북송을 주장했지만,
전향서를 이유로 묵살되고 2004년 4월 지병으로 세상을 뜨셨다.

삶과 죽음으로 밖에 타협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에 죽어간 이들은 말이 없을 뿐…
오늘도 지리산의 산철쭉은 유난히 붉다.

(벽소령)

산행을 시작한지 11시간이 가까히 되서야 벽소령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더욱 굵어져 비옷을 입어도 모두 젖을 수 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매우 양호하다. 한명의 낙오자도 없었기에 가능.. 산장의 1박은 꿀맛같은 밤을 선사했다.
저녁 09:00면 어김없이 소등하기에 잠이 부족하지 않다. 저녁은 너무 맛있다.
식사후 벽소령 산장 앞에 나와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다. 안개낀 산장과 주변 경치는 한폭의 그림이다.

(Day2-안개산행 / 벽소령-선비샘-세석-촛대봉-장터목)

오전에는 비오고, 오후부터는 갠다는 일기예보는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능선길은 내내 안개로 덮혀 뵈는 게 없다. 철쭉과 구상나무로 아름다운 세석에서도 안개는 거칠줄 모른다. 안개속에 보이는 세석의 빨간 철쭉 꽃밭은 신비롭다.
몇개 봉우리를 넘으니 날씨가 점차 갠다. 구름이 계곡까지 내려온 지리산은 불타는 하얀 연기에 휩싸인듯.
약 6키로의 산행은 좀더 여유롭다. 그리고 첫날보다 훨씬 능선과 봉우리가 아름답다.
안개속에 드러나는 바위 봉우리들이 참 아름답다.

(장터목)

천왕봉까지 1시간 거리의 장터목 숙소는 언제나 붐비는 곳이다.
맑아지는 날씨덕분에 장터목에서 보는 지리산은 환상적인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점점 산생활에 익숙해져 밥도 금방, 찌게도 금방, 일사불란하다.
지리산의 겨울 경치를 디카에 담아 보여주니 일행들 모두 까무라칠 듯..왠 겨울경치 ?

(Day3-새벽산행 / 장터목-천왕봉-중봉-치밭목-유평리)

새벽3시30분에 일어나 짐을 싸서, 천왕봉으로 향했다.
산의 윤곽을 보니 낮이라면 좀더 훌륭한 경치를 볼 수 있을 코스같다.
이제 막 개인 날씨덕분에 머리위에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별 보기가 몇년 만인가 ?
동익선배는 밀키웨이를 연발하며 감탄.. 천왕봉엔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발아래는 뭉개구름바다..아직 태양은 솟지 않았다. 이곳에서 보는 발아래 경치가 좋다. 참 아름다운 산야다~
"산을 시작하려거든 지리산 먼져 들리라~"라는 말 뜻을 이해할 듯..
이곳이 아니면 이런 장엄한 운해를 볼 수 있을까 ?

(하산길 선물)

천왕봉에서 멋진 일출의 전율을 간직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내려왔다. 하산길에는 두가지 선물이 기다렸다.
하나는 써래봉지나 바위위에서 본 굉장한 구름바다 이고, 다른 선물은 안개속에 드러난 무제치기 폭포의 환상이다.
구름바다위에서 파의 사진을 찍으니 여기는 에베레스트 정상…남도쪽에는 구름위에 솟은 산이 없다.
그져 끝없이 펼쳐진 구름 바다만 있을 뿐..

무제치기 폭포 팻말을 한버터면 지날뻔 했다. 파가 뒤늦게 들려 가자해서 비로소 팻말을 보았다. 김작가는 되돌아 오는 길이 번거러운지 그냥 기다리겠다 한다. 조금 내려가니 하늘에 폭포가 있다. 떨어지는 곳은 보이지 않고 그저 물이 떨어지는 하늘 폭포만 보일뿐.. 마침 우리가 산행하기 전날 비가 내려 풍부한 수량으로 이 환상적인 폭포가 연출된 듯하다.

짧게 가는 주능선 길도 들머리와 날머리를 어디로 정하는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성삼재에서 시작해 천왕봉까지 갔다가 다시 하동바위길로 내려서면 가장 짧은 주능선 종주고, 화엄사에서 출발해 코재를 거쳐 노고단에 올랐다가 천왕봉, 치밭목대피소를 경유해 유평리로 하산한다면 가장 긴 주능선 종주가 된다.

1,500m가 넘는 연봉들로 이루어진 긴 능선길이지만 적당한 간격으로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샘이 있어 물사정이 좋다.

1박2일에 종주를 끝내려면 이른 시각 노고단을 출발해 세석대피소까지 가야한다. 다음날 장터목 지나 천왕봉을 오른 후에 중산리나 백무동으로 하산하면 된다. 하지만 지리산을 제대로 감상하며 종주하려면 2박3일 일정이 좋다. 첫날 벽소령에서 자고, 다음날 장터목대피소까지 가면 된다. 마지막 날 새벽에 천왕봉을 올라 일출을 감상한 후에 치밭목이나 중산리, 백무동 중 한 곳으로 하산하면 된다.

주능선에는 여덟개의 대피소가 있는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직영하는 노고단, 벽소령, 세석, 장터목, 로터리대피소는 이용료는 1인당 7,000원씩이며, 모포대여료가 1장당 1,000원씩이다.
예약을 하지 않았을 경우 오후 6시까지 대피소에 도착하면 보통은 예약자 자리배정후 잔여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다.
성수기엔 미리 예약해 두어야 하는데, 사용일 보름전(15일) 부터 국립공원 홈페이지(http://www.npa.or.kr)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 박중영의 지리산 종주기 인용 -